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① <살아있는 성기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icks, 2021, 19분)
일리야 라우치 감독, 소냐 쿠이티넨 등
시놉시스 : 여자들에게 성기 사진을 보내는 남자들의 행위가 토론의 주제로 부쳐진다. 패널로 참석한 벤라는 남자들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특별한 안경을 갖게 되고, 이를 들킨 남자들은 벤라를 뒤쫓기 시작한다. 몰지각한 관습을 꼬집은 단편 <헬싱키 맨스플레인 대학살>로 22회 BIFAN 작품상을 수상한 감독의 신작. 성기괴물이라는 과장된 설정을 통해 전통적이고 이분법적인 젠더 의식을 유머러스 하게 해부한다.
강렬한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끌었던 <헬싱키 맨스플레인 대학살>의 감독의 신작이 2018년에 이어 다시 한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영화는 인간을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이에 고립되어 발생하는 고정관념, 암묵적인 위계 의식을 비판한다.
영화는 모르는 남자로부터 성기 사진을 받는 테러에 분노하던 주인공 벤라가 남성들이 실제로 성기 모양의 얼굴을 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안경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기묘한 하룻밤을 그린다. 실체를 들킨 남성들은 벤라를 쫓기 시작하고 결국 성기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그때 벤라를 돕던 남성이 각성하여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지 않다’고 외치며 자신의 성기 머리를 찢어버려(…) 그들을 물리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내가 쓰면서도 당최 정리가 되지 않는 당혹스러운 내용이다. 로메로 감독의 고전 호러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를 패러디 한 제목이 애매한 정도로 이해된다.
일단 메시지만 놓고 보면 꽤 명확하다. 결말에서 벤라와 남성은 결국 이분법적인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고, 나아가 이 사회에서도 왜곡된 젠더 의식이 사라지길 바라는 감독의 염원이 드러난다.
그러나 사실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지에 대해선 확신이 서지 않는다. 대사나 연출이 어수선한 것은 둘째 치고, 일단 비주얼의 충격이 매우 크기 때문에 다른 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흑백 영화라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노골적이고 징그러운 성기 머리들이 눈을 피할 수도 없을 만큼 생생하게 보여지는데, 이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잘 만든 듯하면서도 조악해 보이는 비주얼이 피터 잭슨 감독의 1987년작 <고무인간의 최후>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도 곱씹어보면 뜬금없고 말도 안 돼 보여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영어권에서 짜증나거나 재수없는 사람을 남성 성기를 나타내는 단어인 ‘dick’이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도 여러 부정적인 상황들과 사람들에게 ‘‘ㅈ’같다’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성기 사진 테러 같은 것을 하는 이들을 실제로 성기 모양의 괴물로 표현하는 것은 아주 맥락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영화제가 끝난 상황에서 쓰는 리뷰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당신이 B급 감성이 넘치는 블랙코미디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주변인에 따르면 위에 언급했던 감독의 전작 <헬싱키 맨스플레인 대학살>이 낫다는 평이 대부분이긴 하다.
페미니즘적 주제의식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B급 비주얼의 영화가 더 보고 싶다면, 위에 언급한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 1987)나 뮤지컬 영화 <흡혈 식물 대소동>(Little Shop of Horrors, 1986)을 추천한다. 기괴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괴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일리야 라우치 감독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 메세지
https://www.youtube.com/watch?v=kmE3_qBgoAI&ab_channel=BIFAN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