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 100분)
켄 로치 감독, 데이브 존스, 헤일리 스콰이어 등. 왓챠
시놉시스 :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다니엘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히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엘은 두 아이와 함께 런던에서 이주한 싱글맘 케이티를 만나 도움을 주게되고,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을 통해 1920년대 아일랜드인들의 독립 운동을 재조명했던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다시한번 마이크를 받지 못하던 사회의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그가 할 수 있는 노동의 양으로 정의된다. 평생 성실히 일해온 평범한 노동자 다니엘 블레이크는 ‘노동 불가’ 판정을 받자마자 사회의 바깥에 놓인다.
현대 사회의 복지엔 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다니엘 블레이크는 절묘하게 그 조건을 벗어난 인간이다.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하기에도, 복지 혜택을 받기에도 부족하다. 그는 충분히 건강하지 못한 동시에 충분히 아프지 않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받고 나서야 외친다. 나도 살 권리가 있다고.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르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명의 영웅이 아니다. 우리는 결국 그의 비관적인 미래를 예상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을 바꾸기란 어렵다. 특히 영화 한 편으로 바뀔 세상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식의 계몽영화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 감독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덤덤히 조명하는 것으로 저항의 선언문을 대신한다.
<로제타>(1999)와 <웬디와 루시>(2008)은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로제타와 웬디, 그리고 웬디의 개 루시는 제대로 된 집도, 도움을 청할 가족도, 당장 먹을 음식도 없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쓰는 것 역시 꾸밈없이 이들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