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폴>(Beanpole, 2019, 137분)
칸데미르 발라고프 감독, 빅토리아 미로시니첸코, 바실리사 페렐리지나 등. 왓챠
시놉시스 : 1945년 레닌그라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힘겹게 살아간다. 간호사인 ‘이야’ 역시 뇌진탕 증후군으로 갑자기 온몸이 굳어 버리는 병을 견디며 아들 ‘파슈카’와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야’에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전쟁 지원병이었던 친구 ‘마사’가 돌아오자 두 사람만이 알고 있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 여인은 서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영화 스포 주의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들의 몸에, 그들의 일상에, 그리고 그들의 영혼에까지. 방을 어지르는 것은 잠깐이나 치우는 것은 한참이듯,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를 복구하는 데에는 모두가 달려들어도 모자라다.
이야는 해맑은 웃음을 가진 아이 파슈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 아픈 몸이지만 일을 쉬지 않고, 아이를 위해 바느질을 하며, 공부를 가르치고, 아이를 놀아주며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행복은 너무도 깨지기 쉬운 것이어서, 그래서 더 소중한가보다. 거대한 일상이 깨져버린 이야가 받은 상처, 그리고 이를 받아들여주고 감싸주려는 마사의 사랑이 영화 속에 초록과 빨강의 강렬한 색채 대비와 함께 나타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남성들, 그리고 흔히 ‘남성들의 것’이라 여겨지는 전쟁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야기는 두 여성이 서로를 사랑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질감과 조화로움을 동시에 지닌 이 색채들에서 관객은 전쟁의 부조리와 함께 그것을 치유하는 힘을 느낀다.
강렬한 색감을 가진 영화로 자주 언급되는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은 병동에서 만난 아이를 위해 알록달록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 같은 영화이다.
<빈폴>의 색감과 관련해서 더 쉽게 떠오르는 영화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이다. 포스터에서부터 알 수 있듯, 초록과 빨강의 드레스를 입은 연인들이라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색을 중요시하는 영화들이 으레 그러하듯 대부분 시적이고 감상적인 내용들이기에 선선한 늦여름 밤에 맞춰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