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가드>(The Old Guard, 2020, 124분)
지나 프린스 바이더우드 감독, 샤를리즈 테론 등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이 별로다. <올드 보이>와 <보디 가드>가 합쳐진 듯한 이름이 그다지 세련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영화보단 유럽 작품 같은 다양성과 참신한 소재만큼은 결코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영화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멸의 존재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한 긴 싸움을 해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로 시작한다. 쉽게 말하자면 <맨 프롬 어스>, 뭐 그런거다.
플롯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구출 작업을 한다든가, 수상하게 강하고 수상하게 사망률 낮은 이 집단을 연구하려는 정부 기관으로부터 도망치는 등 클리셰한 내용들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영화가 여느 액션 영화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은 판타지적 요소를 담고 있는 것에 어울리는 감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앤디가 이끄는 이 미스테리한 전사들은 이타적이면서 이기적인 집단이다. 이들은 돈만 보고 할 일을 정하기보다는 역사적으로 그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기를 선택한다. 인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이 가진 건 서로밖에 없다. 누군가에겐 수호자이지만 정작 그들을 지켜줄 이는 없다.
마치 운명처럼 서로를 감지할 수 있다는 로맨틱한 설정이 개연성을 가지는 이유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아무리 의견이 충돌하고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서로를 지켜야만 하는 유사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액션마저 감성적으로 보이는 건 아마 샤를리즈 테론의 촉촉한 눈빛 때문이리라. 오랜 세월을 보내 온 탈인간적 존재의 우수에 찬 눈빛을 잘 표현했다. <아토믹 블론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등에 등장했던 샤를리즈 테론의 고독한 전사 같은 모습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시청해야 할 영화다. 그것 하나로도 가치가 있으니까.
그리고 결말을 보고나면 누구라도 "2편 없어?"라고 말할만한, 성공적인 프랜차이즈가 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세계관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소재의 유사성 때문에 <맨 프롬 어스>를 언급하는 사람이 많은데, 확실히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여러 뱀파이어 영화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뻔하지 않게 같은 넷플릭스 영화 중 하나인 <버드박스>(2018)을 추천할까 한다.
눈이 마주치면 괴물(?)로 변해버리는 미스테리한 현상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있는 세상에서, 생존 마스터이자 보호자로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산드라 블록의 연기가 <올드 가드>의 앤디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말로리가 두 아이를 그저 '보이'와 '걸'로 부르는 모습은 아직 인간이 멸종 위기 근처에도 안 간 상황에서 너무한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콰이어트 플레이스>처럼 최근의 생존 호러 SF들을 보면 인류는 너무 발전한 나머지 멸종하기 위해선 감각 하나를 통째로 차단당하는 정도의 위기가 필요한 듯하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원래 그 감각을 사용하지 않던 이들 즉, '장애'를 가진 이들이 오히려 생존에 적합한 모습을 보이는 역逆진화의 양상을 띤다.
SF 팬으로서 <서던 리치: 소멸의 땅>과 함께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으로, 넷플릭스에서 이런 것들을 많이 만들어주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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