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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영화추천] 14. ‘평범한 가정주부가 스파이가 된다면?’<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亀は意外と速く泳ぐ, 2005)

by 메기127 2021. 8. 14.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は意外と速く泳ぐ, 2005, 90)

미키 사토시 감독, 우에노 주리, 아오이 유우 등

 

시놉시스 : 평범하다 못해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 스즈메(우에노 주리). 그녀는 자신보다 애완용 거북에게 더 관심을 쏟는 남편과 무서울 정도로 단순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스파이 모집광고를 발견한다. 무심코 전화를 해버린 그녀 앞에 나타난 스파이는어느 나라의 스파이라고 주장하는 쿠기타니 부부. 그들은 스즈메 같은 평범한 사람이야말로 스파이를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억지로 활동자금 500만엔을 건네받은 스즈메의 스파이 교육이 시작되고 일상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스파이가 되고 나서부터 평소보다 주위의 시선을 더 모으게 되어 곤란한 그녀에게 마침내 최후의 미션이 내려지는데

 

 


 

*영화 스포일러 주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파이는 대부분 007처럼 핫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CIA 등 세계 최고의 스파이들이 일하는 기관들에 따르면 스파이의 필수 조건은 눈에 띄지 않는 외양이다. (넷플릭스에서 스파이 행동강령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제목이 기억나질 않는다. 아시는 분은 제보 좀!)(-찾았다! <언더커버:적진 오퍼레이션>(1943)이라는 영상이다. 넷플릭스에선 내려간 듯 하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이러한 조건에 딱(?) 맞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으로 인해 혼자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 스즈메는 우연히, 매우 수상한 스파이 모집 공고를 보고 연락을 하게 되고, 덜컥 스파이가 된다.

 

 

 

 

특별한 임무도, 비밀도 없는 스파이 일이지만 스즈메의 일상은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늘 하던 일도 어쩐지 새롭고 두근거린다. 냉장고에 넣어놓은 활동자금 500만엔(약 5천만원) 때문일까. 스즈메는 평생 느껴본 적 없었던 여유를 느끼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올랐다.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선 일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돈과 홀로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범하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기 위해 살아왔던 스즈메에게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이제 그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게 되었다는 것과 다름없다.

 

 

 

 

조금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전개 속에서 관객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쫓기듯 살아왔던 현대인들이 꿈꾸던 것이 바로 일상이 두근거리는 스즈메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어처구니없는 비장함에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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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분위기지만 훨씬 침착한 스파이 영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짐 자무쉬의 <리미츠 오브 컨트롤>(2009)의 주인공은 영화 내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의 말을 듣고, 커피를 마시고, 작업을 준비한다. 짐 자무쉬의 영화가 종종 그러하듯 소소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부조리함들 또한<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연상시킨다. 매우 침착해짐과 동시에 골치 아픈 생각거리를 떠안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트윗도 하나 소개하겠다. 번역은 대략 이러하다.

 

"오늘 스타벅스에서 이상한 남자를 한 명 봤다.

그는 아이폰도, 타블렛도, 노트북도 없이 그냥 자리에 앉아있었다.

거기서 그냥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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