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Who framed Roger Rabbit?), 1988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밥 호스킨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등
오늘은 뭐랄까, 혁신적인 영화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포스터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만화 세계와 인간 세계가 공존하는, 차원을 넘나드는 세상을 전제한다. 만화 캐릭터들은 마치 할리우드 배우처럼 감독의 지시에 따라 세트장에서 만화를 찍는다. 주인공 에디 발리안트(밥 호스킨스)는 LA에서 활동하는 사설탐정으로, 모종의 사건으로 절친했던 형을 잃고 술독에 빠져 산다.
그러던 어느날 에디는 LA 최대의 제작사인 마룬 스튜디오의 사장 R.K. 마룬의 사주로 만화 스타 로져 래빗의 아내, 제시카 래빗을 조사하게 된다. 만화 캐릭터들이 운영하는 술집인 '잉크&페인트'의 디바 제시카 래빗의 고혹적인 모습에 마음을 뺏긴 것도 잠시, 공연이 끝나고 제시카가 그 지역의 거물 마크 애크미와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을 목격한다.
불륜 행각을 찍은 사진을 본 로져 래빗은 큰 상심에 빠져 술을 마시곤 스튜디오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다음 날, 마크 애크미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금고에 깔리는 지극히 '만화 같은' 방법으로 살해되고 용의자로 로져 래빗이 지목된다. 도움을 청하는 로져 래빗을 숨겨주던 에디는 이 사건이 만화 마을에 새로 부임한 잔혹한 판사 둠(크리스토퍼 로이드)과 관련되었음을 알게 되는데...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제시카 래빗의 비주얼로 가장 유명하다. 베티 붑을 포함해 대놓고 섹시한 컨셉의 만화 캐릭터는 많지만, 옛 할리우드의 섹시 심벌 여배우들이 그러했듯 제시카는 화려한 외형 속에 진정성 있는 매력을 가진 캐릭터다. '난 나쁜 여자가 아니에요. 그렇게 그려졌을 뿐이죠.', '(로져를 사랑하는 이유는) 날 웃게 해 주기 때문이에요.' 같은 대사들이 내 마음을 울렸다. 여전히 섹시함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 대사들이 더 기억에 남는 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로렐라이(마릴린 먼로)가 마음에 남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제시카가 '잉크&페인트' 클럽에서 공연한 노래 'Why don't you do right'이 원래 좋아하던 노래라 소개해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줄리 런던 버전! 옛날 재즈나 팝은 같은 노래를 여러 가수들이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쓰고 싶지만 지금은 지식이 적어 패스!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연기한 둠 판사는 사실 보면서 제레미 아이언스인 줄 알고 너무너무 혼란스러웠다. 평소 연기하던 스타일과 너무 달라서... 근데 생김새도 그렇고 낮고 섹시한 목소리도 비슷해서 (스포)한 정체가 드러나고 나서도 계속 혼란스러웠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그의 필모를 몇 개 찾아봐야겠다.
내용 자체는 정의로운 탐정과 세계 정복을 꿈꾸는 빌런이 등장하는 클리셰 가득한 서스펜스 수사물이지만, 영화에서의 클리셰와 만화에서의 클리셰가 섞여있다는 점이 혁명적이다. '인간을 웃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만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락하는 모습, 그 안에서 소모되는 만화 캐릭터 등은 할리우드를 풍자하는 은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유치하며 시끄럽고 정신없는 영화였지만 한번쯤 보면 영화와 만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한 마디로 그러니까... 판타지아 어벤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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